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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운 오후2시의 잡담

- 북프로젝트 / 32pages

"32pages"
늦은 오후, 동네 꼬마들이 뛰놀고 있는 골목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놓은 작업실에서 박소영은 기타를 치고 있고, 하나 둘 도착한 친구들은 그녀의 새로운 파마머리에 깔깔대고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직장 동료로 만나,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절친한 사이를 지나, 이제는 동료 작가로 첫발을 내 딛은 박소영, 지남희, 신설화, 박선정. <32pages>는 네 명의 즐거운 젊음의 기록이다. 한가로운 여름 오후 골목, 그늘 없는 그들의 웃음소리처럼 <32pages>가 던진 신선한 울림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 이소연




오후 두 시의 잡담에서 32pages는 시작되었다.

32page를 어떻게 해보자고 의기투합 하시게 되었나요?
남희: 지금은 저희 친언니 같은 존재인 o-check 시절 팀장님 댁에 놀러 갔다가 얘기가 나오게 되었어요.
설화: 옛날에 o-check에서 일할 때도 이 멤버들과 같이 일했을 때가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그 기억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도 미련이 남는 거에요. 근데 마침 다들 회사를 그만두고 놀고 있어서 평일 오후에 만나서 얘기하다가..
남희: 오후도 한 2~3시쯤에. 술 먹을 때도 아니고 아침도 아닌 여유로운 시간.
박소: 디게 미미하죠. 알에서 태어난 것 같이.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같이 작업하신 부분도 있을 것이고, 어떤 부분은 따로 작업하셨을 텐데, 32pages의 기획부터 출판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박소: 2월에는 같이 어떤 프로젝트를 할 건지 구체적으로 32pages의 성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고, 4월부터는 본격적으로 각자 끌고 갈 주제에 대해 1주일에 한번씩 회의를 했거든요. 그 회의에서 서로 진행된 결과를 보여주면서 조언도 얻었어요. 5월에 최종원고 넘겨서 제작하고, 전시일정도 잡고 판매처도 잡게 되었어요.

왜 하필 32페이지인가요?
박소: 32페이지… 32페이지… 어렵다. (웃음) 저희가 다 인쇄 쪽에서 일을 했었는데 전지종이 한 장에 B5사이즈 32페이지가 나올 수 있거든요. 그래서 각자 주제는 달리하더라도 32페이지라는 같은 포맷 안에 각자의 생각을 담아보자 했어요.
남희: 저희에게 o-check이라는 곳이 첫 회사에요. 그렇게 처음 시작은 같이 했지만 지금은 o-check이라는 첫 출발점에서 제각기 조금씩 달라져 있거든요. 그런 것처럼 최소한의 포맷은 동일하게 유지하면서도 자유로이 서로 다른 결과물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32pages 소개에 보면 “스타일을 배제하고 최소한의 프로세스로 최대한의 결과물을 낸다”라고 하셨는데요.
남희: 예를 들자면, 인쇄에서는 후(後)가공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박도 있을 것이고, 코팅도 있을 것이고.. 책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그런 것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싶었어요. 꾸미기보다는 덜어내고, 빼내고, 담백하게, 멋있는 척하지도 않고, 너무 겸손해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종이 딱 한 장으로 만들 수 있는 것.


멋있는 척하지도 않고, 너무 겸손해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매거진magazine이 아니라 북book이라고 밝히셨습니다. 북book이라는 단어가 이 작업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인 것 같은데, 그 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남희: 한 번 읽혀지고 마는 인스턴트가 아니라 책꽂이 구석에 있다가 우연히 혹은 일부러 가끔씩 꺼내보게 되는 책이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할까요. 요즘에 저희 같은 자가출판이 붐인 듯 한데요, 대개는 매거진이란 이름을 달면서도 비정기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희는 매거진 보다는 북이라는 단행본을 추구하는 거에요. 매거진은 여러 가지가 한 호에 실려있잖아요. 그렇지만 저희는 한 사람의 생각이 책 한 권에 담기는 거에요. 그렇게 4권씩 4번. 1년에 16권이 출판되는 거죠.

좋아서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하니, 별로 생각해 보진 않았을 듯 하지만, 수익구조에 대한 부분은 어떻게 고민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남희: 종이도 그렇고, 인쇄도 1도를 하건 4도를 하건 자기가 디자인한 책은 그만큼 자기가 투자하고, 이익도 팔린 만큼 자기가 가지는 거고.
박소: 32pages를 굴러가게 하기 위해 회비를 매달 내는 건 있어요.
설화: 그러나 그건 항상 뭘 먹거나. 아하하(일동 웃음) 다들 이걸로 큰 돈을 벌자는 게 아니라 계속 어느 정도의 작업을 할 수 있는 정도. 이걸 하고 난 다음에 또 준비할 때 서로 자극을 받고 생활의 활력을 좀더 얻고..
박소: 32pages에 대해 가진 생각이 각자 조금씩 다르거든요. 외국에 보면 Zines라는 책이 있어요. 아티스트들이나 판화가들이 자가출판 하는 에디션edition 한정북이거든요. 아트북 보다는 조금 더 대량생산된 책이죠. 저 같은 경우는 북아트를 하고 있는데, 북아트 작업과는 또 다른 그런 작업도 하고 싶어서, 32pages가 그걸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되겠다 해서요.
남희: 이렇게 생각이 조금씩 달라도 이해를 할 수 있는 게 저희는 32pages라는 출판사고, 우리 각자는 그 출판사에 소속되어 있는 하나의 작가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저희가 디자인도 하고 인쇄도 하고 제작비도 내지만 32pages라는 곳이 저희 책을 발행해 준다고 생각해요.
박소: 수익구조에 대해 얘기할 때 저희가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는데 결론은 단순했어요. 아하하(일동웃음)
남희: 이렇게 쉬운걸.

종이를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종이에 얽힌 일화가 있다면요.
설화: 저희는 인쇄소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똥종이를 되게 좋아해요. (일동 웃음) 인쇄 깔끔하게 안 나오고, 나중에 인쇄 감리 보러 가면 인쇄소 사장님들이, “니네 꺼는 티끌이 원래 있는 건지 아니면 이걸 잡아야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남희: 기계 같은데 잘 걸리기도 한대요. 다른 출판사에서 많이 쓰는 종이를 안 쓰고 저희는 방산시장 같은 데 다니면서..
설화: 별로 없는 재고 남은 종이, 갱지, 시험지 같은 거 찾아 다녀요. 디자이너들이 대개 수입지 많이 쓰잖아요. 근데 저희는 그런 것 말고, 이 세상에 없는 그런 종이 찾아 다니느라고 조그만데 돌아다니고..
박소: 종이를 만드는 사람도 의도가 있으니까 예를 들면 ‘이것은 종이컵을 만들 때 좋은 종이’ 그런 게 정해져서 나오는데, 시장에 가보면 베어링 같은 기계들 포장하는 종이라든지 꼭 인쇄용이 아닌 종이들도 찾아보면 예쁜 게 많거든요. 열외. 비주류.
남희: 우리도 비주류야? (일동 웃음)
설화: 저희가 왜 이렇게 인쇄가 안 나오냐고 하면, 좋은 종이를 쓰고 그런 얘기하라고 그러세요. 저희가 칼로 치는 것도 일부러 삐뚤게 하는 것도 많은데, 일부러 사장님은 신경 써서 해주시느라고 저희가 의도한대로 안 해주시기도 하죠. 일부러 거꾸로 인쇄한적도 있어요. 뒷면에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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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 같은 본능으로 「The People」- 박선정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두 눈을 크게 뜨고 말없이 꿈벅거리며 듣다가 누구보다도 크고 유쾌한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자신의 작업에 대해 말로 설명하는 재주는 누구보다도 없었지만, 「The people (around me and me)」에는 어린아이와 같은 본능으로 날 것 그대로 잡아낸 주변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박선정 님은 o-check 시절에 작업한 디자인 제품들과 이번 책이랑 느낌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선정: o-check에서 작업할 때는 회사 스타일에 맞추어 작업했었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해 본 것이거든요. 원래 낙서하고 끄적이는 걸 좋아해요. 어떤 책을 만들까 고민하다가, 이 책을 위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는 그 동안 해왔던 걸 모은다는 느낌으로 시작해봤어요.

o-check스타일도 좀 거친 면이 있긴 하지만, 이번 책은 좀 더 정제되지 않고, 완성되지 않은 느낌인 것 같아요. 사진도 다른 사람들이라면 고르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구도의 사진들을 골라 실으셨고요.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은 어떤 것인가요?
선정: 제게 영감을 주는 것들은… 뭐라고 말할 수는 없는데, 길을 가다가도 다 똑 같은 집이지만 제 눈에 특별히 예쁜 집, 그런 게 있어요. 작가들은 아직 잘 모르지만, 경연미라는 분 그림 진짜 좋아해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요?
선정: 이번 책 작업을 하다 보니 공책에 낙서하고 끄적이는 것보다 점점 의미를 담고 싶어졌어요. 큰 그림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림공부 열심히 해서 동화작가가 되고 싶어요. (남희: 학생의 인터뷰를 듣는 것 같아. - 일동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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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숨길 수가 없다「This is not this is」- 지남희


지남희 작가는 아주 빨리, 아주 많은 말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가끔 말보다 생각이 저 멀리 뛰쳐나가곤 했다. 「This is not this is」는 네 권의 책 중에 가장 장식 없이 건조하면서도 설명이 많은 책이다. (서른 두 쪽짜리 책에 각주와 인덱스라니..) 그러나 다음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말과 글이 열정을 미처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에서는 노동자라는 단어가 특이했습니다.
남희: 는 이 책 한 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제가 끌고 나갈 작업이며,저의 브랜드에요. 회사 개념으로 시작한 것이라서요. 회사에 마케팅, 투자자, 기획자, 생산하는 사람, 이런 직원들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직 돈이 없으니까 그 사람들이 다 저인 거에요. (일동 웃음) 노동자는 그런 의미죠.

책 내용이 1번, 2번, 3번 이렇게 진행하잖아요. 각주도 일일이 달려 있구요.
남희: 추상화 같은 작업에서는 점 하나를 찍어놓은 그림을 보고도 사람들마다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잖아요. 그렇지만 저는 제 책을 읽는 사람은 제가 생각한대로 봐주기 바래서, 1번은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2번은…. 이렇게 한 거죠. 그래서 책 옆에 ‘발명’, ‘발견’ 같은 아주 쉬운 단어도 다 주석을 달아놨는데, 그건 사전적 의미 그대로만 읽어주세요, 라는 의도였죠.

마지막의 콜라보레이션. 그건 다른 분들과 같이 작업하시는건가요.
남희: 라벨이라는 것은 디자이너의 작업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그 브랜드의 얼굴인데, 항상 옷 안에 숨겨져 있고 부속품으로만 쓰이잖아요. 저는 라벨이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열 여덟 분 정도의 패션 디자이너들한테서 라벨을 받아 작업했어요. 이 작업을 꾸준히 해서 좀더 월드와이드해지고(웃음) 좀더 멋있어지면 제가 좋아하는 코스믹원더 같은 브랜드의 라벨로도 계속 진행하고 싶어요. 콜라보레이션은 책을 기획할 때, 기획의도에서부터 있었어요. 콜라보레이션하고 싶은 디자이너 분들께 책을 보여드리며 제 의도를 설명해 드렸더니 흔쾌히 좋다 하셔서 진행하게 되었죠. 그럼, 32pages가 앞으로의 작업에 단초가 된 것이네요. 그렇죠.

단어의 의미에 대한 각주를 하나하나 넣은 이유는, 오역 없이 그대로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의도라 말씀하셨지만, 한편으로는 본인 자신이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물으면서 기본으로 돌아가고, 디자이너로서의 출발점이 어디였는지를 자문하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남희: 예. 맞아요. 작업하면서 영어사전이 아닌 국어사전을 정말 많이 찾아보며 쉬운 단어도 하나하나의 의미를 되짚으면서 선택을 했어요. 제 인생에 고비가 있다면 26살 때였던 것 같아요. 법적으로는 성인이지만 회사원같이 다듬어지지도 않은 나이 26. 이륙이라는 게 뜨려고 하는 중간상태잖아요. 그래서 26을 가슴에 차고 다녔어요. 지금은 그걸 선정이에게 물려줬죠. 이제는 27살이 되었으니까 새로운 27을 찾아야겠구나. 그러면 바지 사이즈 27, 이렇게 쉽게 생각한 거에요. (박소: 너 27 입어?) 아니, 난 27 더 입지. (일동 웃음) 그러다가 옷의 라벨로 진행하는 콜라보레이션까지 오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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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즈막한 콧노래로「London to Paris」- 신설화


어떻게 보면 트렌드에 묻어가는 책처럼 보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London to Paris」는 개인적인 기록이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을 수 있는 접점을 자연스럽게 찾아냈다. 나즈막한 콧노래처럼 딱 그만큼 기분좋고 그만큼 심심하지 않은 그녀를 만났다.


신설화 님의 는 2007년 런던부터 파리까지의 여행인데, 그 때의 여행이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었나요?
설화: 제가 o-check에서 문구 디자인을 하는 동안 일본에 출장을 자주 가게 되면서 일본스타일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일본스타일이 나온 곳이 궁극적으로는 프랑스더라구요. 그래서 한 번 가공 되어진 일본 스타일이 아닌, 원류인 프랑스에는 뭐가 있는지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보니까 프랑스의 보통 문방구에 있는 것들을 일본의 shop에서 굉장히 비싸게 파는 거더라구요.

그냥 무지 배경인 페이지도 있고, 노트 배경인 페이지도 있는데요.
설화: 저는 사람들이 이게 무슨 책인지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예뻐서 샀는데, ‘여기가 거기네’ 했으면 해요. 이 책을 여행갈 때 가지고 간다면, 그 무지 배경에 자신의 생각과 느낌 같은 메모들을 쓴다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게 굳이 의도였다고 얘기해주고 싶진 않아요. 항상 제품을 만들 때, 규정짓지 않는 것, 사람들이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이면서 노트이기도 한 거군요.
설화: 네. 이런 곳이 있구나 하면서 책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테고, 여행을 가서 노트로 쓰거나, 갔다 와서 느낌을 적는 사람도 있을 테고요. 런던이나 프랑스에 관한 여행서들이 참 많은데, 저는 보통의 여행서처럼 설명을 쓰거나 제 감정을 싣기 보다는 이미지 중심의 작업을 했어요. 그냥 예뻐서 샀는데 찬찬히 들여다 보면 정보가 들어있는, 설명하지 않는 책이요.

말씀하신 것처럼 일반적인 여행서 같진 않습니다. 개인적인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건조하게 정보만 나열한 느낌도 들어요.
설화: 저는 많은 사람들이 제 디자인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제 의도를 이해하고 저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만이 제 디자인 제품을 고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라면 제가 책에 골라 실은 것들을 좋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감정을 녹이지 않고 건조하게 만들었어요. 여행을 준비하면서 많은 책들을 찾아 보고, 그 정보들 중에서 자신의 여행지를 선택을 하는데, 그럴 때 제 책이 가이드가 되어주었으면 해요. 저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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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부를 찌르는 관찰자「The world of the word」- 박소영


보통 사람들이 세상의 표면만 보고, 또는 의미만 보고, 말하고 웃고 싸우고 울고 있을 때 그녀는 그 이면의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 또릿또릿한 눈으로 몰래 관찰하고 있던 세상을 펼쳐 보여주는 순간 우리는 폐부를 찔리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로 통하는 토끼굴을 발견해내는 사람처럼 세상에는 이런 관찰자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박소영은 말 그대로 작가다.


박소영 님은 북아티스트이시죠. 북아트는 책 자체가 텍스트인데 이번 는 그 북아트 작업을 가지고 한 번 더 가공을 한 것이네요.
박소: 북아트 작업은 같은 책의 에디션edition본을 만든다 해도, 만들 때마다 손맛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만약에 세 권을 만든다면 세 권이 다 다르거든요. 이번에는 단 한 권의 북아트 작업을 하기 보다는 영상을 찍는 것처럼 연속성을 가지게 하고 싶었어요.

영상이라고 하니까 책의 내용이 더 잘 이해가 됩니다. 책의 내용을 보면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도 느껴지고. 사락사락하는 책들의 소리가 함께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건 언어와 이미지가 결합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박소: 저는 어떤 순간에 감동을 받아서 아이디어를 얻는다기보다는, 쌓이고 쌓인 추억, 기억의 어떤 한 순간을 건져서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학창시절에 갱지에 시험을 치잖아요. 적막한 공간에서 시험지만 보고 있는데, 시험지에 책상이라는 글자가 나오면 문제를 읽는 게 아니라 저는 글자에 집중해서 보고 있는 거에요. 책상에는 왜 ‘ㄱ’자가 들어가 있지? (일동웃음) 책상을 책상이라 부르는 것도 신기하고, 그렇게 단어에 집착해서 정작 문제는 안 풀고 그랬어요. 그렇게 작업 자체보다는 작업에 대한 말들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래서인지 작가는 개념미술 작가들을 좋아해요. 메리 켈리. 허먼즈. 마르셀 뒤샹

이 책은 어떻게 보면 한 편의 이야기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생각해 놓으신 스토리들이 많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박소: 딱히 소설 같은 스토리는 없고. 다들 그럴 테지만, 일기는 매일 쓰는 편이거든요. 하루에 한 바닥 정도는 쓰고 자고, 글을 쓰다가 아침이 될 때도 있어요. (일동: 우와아아아~ 남희: 박소 언니는 작가 같은 사람이에요. 저는 작가라고 하면 안 어울리고.) 저는 옷 사러 가는 걸 참 싫어했는데, 왜냐하면 옷이 가득 걸려있는 게 되게 답답했거든요. 반면에 도서관에는 책이 가득 꽂혀있어도 냄새도 너무 좋고 편안해지고 그랬어요. 복작복작했던 도서관 열람시간이 끝나서 불이 꺼지고 사람들이 모두 나가고 나면 책들은 뭘 하고 있을까… 책 안의 활자들이 자기네들끼리 얘기를 하고, 책 바깥으로 튀어나오기도 하고 그런 상상에서 이 책이 시작된 거죠. (설화: 멋있다아~~) 나무책이라는 제 북아트 작품도, 나무 안에 나이테만 있는 게 아니라 뭔가 사건이 있을 것 같다는 상상에서 출발한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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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pages가 개인적으로 갖는 의미는 무엇이며, 디자인과 출판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세요?

남희: 요새 자가 출판이 약간 붐이어서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해보고 싶어하는 일이 되긴 했지만, 칠이라는 매거진 아시죠? 그 친구들을 제외하면 막상 저희 또래에 이런 작업하는 친구들이 그렇게 많진 않더라구요. 저는 32pages가 다른 이들의 작업과 무조건 차별성을 가지고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사람들이 32pages를 보면서 “얘네 되게 쉬워 보인다. 나도 해보고 싶네.” 이런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저희에게 자극 받아서 이런 작업을 하고, 저희는 또 그 사이 발전해서 더 나아가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박소: 외국의 북페어bookfair 같은 데를 가보고 놀랐던 것이 사람들이 정말 쉽게 책을 산다는 거였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진 찍기 바빠.(웃음) 껌 한 통 사는 것처럼 아티스트의 책을 쉽게 사고 선물도 하는 문화가 충격적이었고 좋았어요. 우리가 만드는 1년에 4번을 내는 이 책도 해마다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져주면서 쉽게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크릴 안에 들어있어 전시되는 책이 아니라.

32pages에 다른 작가들이 들어올 여지는 없나요?
남희: (단호하게) 없습니다.
박소: 아 정말?
설화: 그거에 대한 얘기를 해본 적이 없구나. 나는 우리가 출판사이기도 하니까, 훗날에는 다른 사람의 책을 우리의 포맷으로 출판해 주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었어.
남희: 난 32페이지 포맷의 지금 작업은 우리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출판사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책을 출판해줄 때는 다른 포맷으로 해야지.

음… 혹시 작업하다가 싸우신다거나…
박소: 어우~ 맨날 싸워요. (일동웃음)
남희: 물어뜯는다고. 하하.
박소: 자기가 작업한 거 가져가려면 그 전날 잠을 못 잤어요. 서로 직설적으로 얘기해주는 편이라서. 같이 지낸 시간이 길고, 잘 알고 있으니까, 서로가 제일 무서운 존재죠.
설화: 그래서 시간 약속 같은 걸 더 잘 지키는 것 같아요. 이걸 안 해갔을 때 애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 다 나를 죽이려고 하겠지. 하하.

작업 때문에 싸우시는 건가요?
설화: 작업은 일부고, 그보다는 돈을 어떻게 나누는가 하는 문제 같은 현실적인 것.
남희: 맨 처음에 32pages를 시작할 때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한 거죠. 그런데 실제로 디자인에 들어가 보니까, 서로 원하는 종이나 컬러도수도 다르더라구요.

32페이지가 각자에게 갖는 의미가 다를 것 같은데요, 이렇게 한 번 책을 내고 난 느낌은 어떠신가요.
설화: 이 친구들한테도 항상 얘기하는 거지만, 저에게는 지금의 제 삶에 안주하지 않고 나를 표현하고 뭔가 해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원동력이 바로 32pages인 것 같아요. 회사생활과 결혼생활에 안주할 수도 있지만, 32pages를 통해서 미래를 생각하는 거지요. 저의 가장 큰 즐거움.
선정: 저에게는 32pages가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게 된 시작이고, 즐거움이고.
박소: 저에게 32pages는 여러 의미가 될 수 있지만 지금 떠오른 건 화장실? 편안하고, 깊이 생각할 수 있고.
남희: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저에게 32pages는 가족 같은 거에요. 왜 “엄마 딸 안 할래”한다고 그럴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32pages는 의무라기보다는 이미 저의 일부가 된 당연한 일인 것 같아요. 가족같이 되었어요.
설화: 저는 지금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32pages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32pages로 자연스럽게 생각이 연결되어요.


32pages를 통해서 미래를 생각하는 거지요.

32pages를 내시면서 결과물을 보고 서로 놀랐다고 하셨잖아요. 가장 놀랐던 것은 무엇인가요?
설화: 옛날에 o-check에 있을 때는 같이 하나의 결과물을 내놓아서 몰랐는데, 이번에 하고 싶은 작업을 각자 해서 내놓으니까 너무나 달라서 깜짝 놀랐어요. ‘우리가 서로 비슷한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각자의 작업을 보니까 이렇게나 다르구나...’하는 거요. 우리의 책을 보면 앞으로 그 사람이 어떻게 될지 보이는 것 같아요.
남희: 정말 그 책이랑 그 사람이랑 닮았어요. 저희는 이런 작업을 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니까, 옛날의 그 사람의 모습도 보이고, 앞으로 이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 지 이번에 나온 책을 보면 다 알겠어요.
박소: 우리가 서로 비슷한 줄 알았는데, 32pages를 하면서 보니, 중심에 32pages를 두고 다들 방사선으로 각자 뛰쳐나간다고 (일동 웃음)
남희: 그렇지만 또 32pages라는 중심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은 것 같아요. 32pages의 처음 한 달 정도는 정체성이라 할만한 조그만 규칙, 예를 들면 로고라든가 그런 것들을 만들기 위해서 같이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32pages가 무엇이라고 분명하게 말로 설명하지는 못할지라도, 마음 속으로는 그게 뭔지 다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각자의 방향으로 막 뛰쳐나가도, 여기 중심의 32pages는 지키고 있는 거에요.
설화: 32pages가 무엇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의 공통점이 종이나 인쇄, 이런 걸까?
일동: 아니, 아니, 아니.
박소: 떠보는 거니? (일동 웃음)
설화: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순 없어요.

이번 32pages작업을 보면서 여러분들이 각자 하고 있는 일들은 다르지만, 이 32pages가 자기의 본연으로 돌아오는 것, 무엇을 하든지 출발점,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 공통분모는 예전에 같이 일했던 오랜 시간들에서 자연스럽게 오는 것이 아닐까요?
박소: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일동 웃음) 이걸 무슨 사업으로 생각하고 시작했다면 이런 결과물이 안 나왔을 거에요. 마케팅으로 접근하고, 이 판매처를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한 게 아니라,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한 거죠.
설화: 해 보고 싶었던 것들을 자유롭게.
남희: 이걸로 돈 못 벌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내 책 내준다는 데가 없으니까 내가 하면 되지 머, 그런 거에요. 음악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내 음반 내주는 데가 없으니까 직접 내는 사람들 많잖아요. 저희는 그게 종이고 책인 거죠.

그럼 앞으로가 또 기대되시겠네요.
설화: 이번에 책을 한 권 냈으니까, 다음 걸 준비해야 하잖아요. 이런 생각을 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워요.
남희: 저희 욕심으로는 꾸준히 하고 싶으니까 발전과 성장에 대한 부담은 있죠. 사실 이런 작업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꾸준히 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그런 부담감과 즐거움이 적절히 섞여 있어요. 앞으로 기대해주세요.
설화: 이러면서도 마음한구석에는 우리가 10월 달에 책을 내야 한다는……. (일동웃음)
박소: 이렇게 떠벌렸으니 이제는 안 할 수도 없고.
설화: 처음에는 이렇게 판매처가 많아질지도 몰랐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음,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일동 웃음)


/ 2008. 8. 19














































































































































































































































































































































32pages

32pages는 박소영, 지남희, 신설화, 박선정 4명의 작가가 의기투합하여 만든 자가출판사이자, 프로젝트 이름이다. 디자인 문구 브랜드 o-check(http://www.o-check.net)에서 만난 직장동료들인 이들 중 몇은 정글 디플로마 동기들이기도 하다. 지난 5월 첫 출간한 책으로 7월 압구정 A Land에서 첫 번째 전시회를 가졌다. 32pages사이트와 상상마당, A Land, 쌈지길, 헌책방 가가린에서 오프라인 판매 중이다. 네 명의 작가가 한 권씩 만든 책 4권이 일년에 4번 나온다. (http://32pages.net)

박소영: (전)o-check, 601비상, (현)프리랜서 디자이너, 북아티스트 http://baksohada.com
신설화: (전)o-check, (현)프랭클린 플래너 디자이너 http://shinseolhwa.com
지남희: (전)o-check, 세컨드호텔 (현)암스테르담 오픈 http://jinamhee.com
박선정: (전)o-check, 일러스트 공부 중 http://sunjeongwork.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