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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NEWS 2011-04-25

넘어지지 않기 위한
특별한 항해

- 그래픽 디자이너 서민경

"넘어

민경이는 강남에 있던 예전 정글이 무척이나 그리웠나 보다. 아무 의심 없이 정글이 머물렀던 강남역에서 전화를 한 민경이는 3년 전 민경이 그대로였다. 덕분에 인터뷰 시간은 조금 늦춰졌지만 민경이가 오는 시간 동안 예전 추억을 좀 더 곱씹을 수 있었다. 프로젝트 마무리 후 한달 동안 부산에서 푹 쉬고 올라온, 덕분에 얼굴이 환히 좋았던 그래픽 디자이너민경이와의 밝은 인터뷰 시간이었다. /쌈





UI 디자인 작업 진행 후 한달 부산 내려가서 푹 쉬었고요,
이제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다음을 준비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서민경입니다.


기존 “그 사람과”의 인터뷰는 봤니?

네. 재미있었어요. 현장감이 느껴지던데요.

일단 비타500 먹고하자.
네. (이날 민경이는 비타500 한박스를 사들고 왔다.)

이 인터뷰를 보는 분들에게 자기 소개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줄께.
음…뭐…자기소개를 좀 더 나중에 하면 안될까요?

좀 더 생각을 하고?
네.

얼마나 멋있게 하려고 그래.
하하하

최근 근황 토크 들어가자. 최근 어떻게 지내고 있니?
가장 최근까지는 게임 UI디자인을 했어요. 일본에 있는 웹게임인데요,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출시 예정이거든요. 그 UI작업까지 하고 한달 부산내려가서 푹 쉬었고요.
이제 다시 서울 올라와서 다음을 준비하고 있죠.


"최근에


프리랜서로 작업 한거야?
거기서 일하고 있는 분이 의뢰가 들어와서요. 바른손 퇴사 후 바로 시작한거죠.


작업은 재미있었어?
네. 제가 처음에 팬시 캐릭터 디자인으로 시작을 했잖아요.
웹 디자인, 카드디자인도 해보고 편집일도 해보고 이번에 UI작업도 해본건데 모두 매력이 틀리고 재미있었어요. 아무래도 저는 다양함을 즐기나봐요. 모든 작업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고 사실 그것 때문에 저는 분야를 안가리고 재미있게 작업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예전에는 저를 캐릭터 디자이너로 명시 했는데요, 이렇게 여러가지를 경험해보면서 크게
“그래픽 디자이너”라고 칭하고 있어요.
사회에 나오면서 많이 바뀐 부분이죠. 만능이 되야겠다 생각도 많이 했고요.


결국 디자인이지. 분야의 경계보다는.
그쵸.



7살 때 이사를 갔는데요,
옆집에 살던 여자애 어머니가 화가셨어요.
집에 있는 유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중. 고등학교때의 민경이는 어땠니? 지금이랑 비슷해?

네. 지금보다 더 발랄하고 그랬어요. 긍정적이고 잘 웃고. 그때 당시 러브짱이 유행이었는데
거기에 낙서해서 애들한테 주면 되게 좋아했죠.


러브짱 나도 디자인했잖아.
아. 그래요? 하하하


대학교때의 민경이는?
1학년때는 학교를 적응해 나갔던 시기였어요. 대학생이 된 자유(?)를 만끽하며 학교생활을 했죠.
하지만 2학년때 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계속 학교에 남아 친구들이랑 그룹을 지어 밤새 작업했어요. 완전 올인을 했죠. 학교과제에서부터 많은 대학생 공모전 작업까지. 그렇게 열심히 하니 학교 생활이 정말 재미 있었어요. 해외 워크샵도 같이 가고 심지어 농활도 가고, 아주 고추밭에서 고추 따느냐고 땀 뻘뻘 흘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대학교


그것도 디자인이니까.
그러네요. 디자인은 경험이 중요한거니까요. 하하
그때 같이했던 친구들은 모두 서울에 다 있어요.


대학교 친구들이 친하구나?
그쵸. 같이한 추억이 많으니.


대학에서 산업디자인학을 전공했던데 본인이 원해서 진로를 결정한거야?
네. 원래 그림을 좋아했어요. 잠깐 제 성장과정을 말씀 드리자면 7살 때 이사를 갔는데요,
앞집에 살던 여자애 어머니가 화가셨어요.


화나셨다고?
엥? 아.. 아니요. 화가 셨다구요. 하하
화가셨는데 걔네 집에 놀러 가면 온통 유화가 걸려 있는 거에요.
그거 보면서 커서 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한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그림그리는 사람이라고 습관처럼 말했고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보면 남들보다 그림을 그리는걸 좀 더 빨리 받아들일 수 있었죠.
중고등 학교때는 꾸미는걸 좋아했고 친구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았어요.
그걸 보면서 이게 내 길이다 생각한 것 같아요.


중간에 다른걸 하고 싶지는 않았어?
제가 중학생일때는 친구들이랑 같이 하이데이지라는 큰 팬시점에 많이 갔어요.
아트박스같은 다양한 팬시 제품이 많았던 곳인데 들어가면 편지지니 수첩이니 연필이니 어제보고 오늘봐도 마냥 신기하고 한 시간이 후딱 가는 거에요.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자주 갔었고 그냥 그게 하고 싶었어요. 다른 어떤 것보다 재미가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중간에 다른걸 하고 싶다는 생각은 못한 것 같아요.



대학교 선배 인턴채용 문의에 발탁이 되서 졸업 1개월 남겨두고
덜컥 저랑 동기오빠 둘이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공모전도 열심히 하고 디자이너의 텃밭을 만들고 있었던게
2006년인거 같아. 어떤 계기로 서울에 올라와야겠다 결심한거야?

원래부터 졸업을 하면 서울로 와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재능에서 캐릭터팀이 생기면서 올라오게 된거에요. 학교 선배의 인턴채용 문의에 제가 발탁이 된거죠. 졸업 1개월 남겨두고 그렇게 저랑 동기오빠 둘이서 올라왔어요.


대학생활을 잘 했나보다. 뭘 잘하니까 추천을 해줬겠지?
제가 잘했다기 보다는 그때 당시 교수님이 생각했을 때 캐릭터에 관심이 많거나 뭐 등등
조건이 맞아서 추천을 해준 것 같아요.


그때 서울에 머무를 곳이 있었어?
없었죠. 연락을 받고 그냥 서울에 포트폴리오 들고 면접을 보러 왔어요.
합격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엄마랑 올라와서는 집을 구했죠.


어디였지?
신촌이요.


혼자?
네. (잠시 추억에 잠긴 듯) 신촌에 있었는데 그때 참 열악한 환경이었죠.
원룸이었는데 옆집에는 신내림 무당집이 있었어요. 입주하기전까지는 몰랐던 거죠.
일요일에 자고 있으면 딸랑 딸랑 신내리는 소리 들리고. 하하하.
엄마랑 아무것도 모르고 신촌 딱내려서는 부동산에 갔는데 그 업자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모르는거 같으니까, “우리는 부산에서 왔으니까 좋은집 좀 주세요.”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에
제일 안 좋은 집을 준거 같아요.


그 부동산 아주머니에게 하고픈 말이있어?
하하. 그러시는거 아니에요.

그때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지는거 같은데?
그러니까요. 눈물이 글썽이네요. 이게 서울이구나. 그게 시작이었죠.


들어보니 충분히 준비를 하고 서울로 올라온게 아니네?
네. 급하게 올라왔죠. 이제 졸업작품전을 끝내고 취업을 해야겠다, 어디를 가야하나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교수님에게 연락이 왔고 면접을 보고 서울을 올라온 거죠.


정신이 없었겠네.
네. 이거는 기회다 그냥. 무조건 해봐야지 하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서울로 올라올 때 두려움은 없었어?

TV에서 보던게 전부였기에 환상이 있었죠. 근데 올라와서 며칠만에 깨졌어요.
사실 서울에 올라오기 전에는 인터넷으로 집을 알아보면 월500에 30이면 다 깨끗하고 좋은거에요.
그래서 크게 걱정 안했어요. 근데 올라오니 이건 웬걸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있는거에요. 처음 원룸에 집을 얻고 엄마랑 청소 엄청 많이 했어요. 집을 보면서 직감했죠. 서울생활이 참 쉽지 않겠구나… 그리고 일하면서 그냥 원래는 인턴하면 정직원 되는거 아닌가라고 철없이 생각했는데 딱 짤리면서 “아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몰랐구나”를 느꼈고 그렇게 현실이 시작된거죠.



학생때 전혀 느끼지 못했던 살벌함.
살아남기 위한 치열함을 절실히 배웠죠.
인턴 3개월을 통해 겪은 한번의 아픔이 저한테는 약이 된거죠.


재능에서 짧게 인턴을 하면서 느낀건 뭐야?
여태까지 서울생활을 하면서 저를 제일 많이 변화하게 만든게 재능이었던 것 같아요.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재능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는게 맞겠네요. 학생때 전혀 느끼지 못했던 살벌함. 살아남기 위한 그런 치열함을 절실히 배웠죠.
인턴 3개월을 하면서 정말 잘하면 뽑히고 아니면 안된다라고 처음에 분명 들었지만 저는 그때 당시 그냥 3개월 후에 뽑히겠지 했어요. 캐릭터 하나를 그리는데 정말 몇 백장의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고 매일 밤 11시 12시 퇴근하면서 컨펌은 하나도 안나고. 그러면서 원래 사회는 이런 거구나. 세심하게 하나하나 모르고 있던 점을 다 지적당하고 그랬어요.
스트레스는 많이 받았는데 발전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느껴졌기에 계속 있고 싶다 생각했죠.
하지만 이별 통보를 받고 충격을 받았죠. 당연히 되는거라 생각했었으니까요.
그때 선배들이 거의 정글 출신이란걸 알게 되었고 이 선배들이 그때 제가 봤을때는 정말 대단해 보였거든요.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생각을 했고 그렇게 정글 캐릭터 디자인 과정에 면접을 본거죠.


재능에서의 일은 재미 있었어?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일에 재미를 떠나서 모른는 걸 바로 지적해주니까.
그때 저는 윗 분들이 보기에는 완전 기가차다 싶을 정도로 무의 상태였던 것 같아요.
계속 받아들였어요. 힘들지만 받아들이고 또 받아드리고. 근데 그런 스펙타클이 즐겁고 재미있었어요. 자료실에 있는 외국서적들을 보면서 이런 방대한 자료가 있구나. 선배들이 외국사이트에 있는 캐릭터를 참고해보라고 가르쳐주면 이런게 있었구나.
웹 서핑하는 방법도 더 다양하게 알게되고. 창작하는 방법과 즐거움도 알게되고.


민경이가 그때 재능에 계속 다녔다면 우린 못 만났겠네?
그렇죠. 하하하


기억난다. 캐릭터 디자인 면접 때 민경이의 모습이.
완전 에너지 충만이었죠. 제 수준을 몰랐다가 프로들을 보면서 책상을 딱 친거죠. 이렇게 캐릭터를 만들었구나. 내가 그 동안 봤던 것들이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통해 만들어 지는구나.
정말 많이 느꼈죠. 한번의 아픔이 저한테는 약이 된거죠.



볼거 보면서, 방황할거 하면서 많이 사람들 만나면서
최대한 많이 느껴야 디자인이 나오는 스타일이라서
그 시간을 즐겁게 즐기려 노력했어요.



2008년도 4월에 우리가 정글에서 만났으니 벌써 만 3년이 지났네.

초롱이는 눈빛으로 면접을 보던 민경이의 모습이 선하다. 정글에서의 6개월은 어땠니?
즐겁게 했어요. 정말 즐겁게 했었고 제 스타일이 스파르타식이 아니잖아요. 볼거 보면서, 방황할거 하면서 많이 사람들 만나면서 최대한 많이 느껴야 나오는 스타일이라서 그 시간을 즐기고 즐겁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사실 중학교 시절부터 비비천사선생님의 홈페이지를 좋아했고 중학교부터 대학교때까지 봤거든요. 늘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언니 같은 느낌의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때 기분이 묘했죠.
가슴이 쿵딱쿵딱거리고. 지금도 계속 지켜보고 있어요.


"정글


비비 선생님께 연락은 드리고 있어?
가끔 방명록에 글 남기고 그래요. 하하


정글에서의 민경이의 모습은 뭐라 그럴까 완벽히 성실한 학생은 아니였어.
하지만 그게 불성실한 느낌이 아닌 민경이만의 방식이었던 것 같아.

그래도 수업 시간에 내주신 과제에 대해서는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때까지 열심히 했어요.
물로 약간의 지각은 있었지만(웃음) ..
사실 집에서는 같은 과제를 내주시더라도 내가 해보지 않은 스타일이나 내가 원하는 퀄리티의 완성도를 가지고 싶어서 고민하고 연구하고 생각하고 그랬어요.


정글 졸업 후 첫 회사에 입사까지 얼마나 걸렸지?
졸업하고 실은 외국에 나갈뻔했어요. 미국에서 진행하는 인턴쉽이 있었는데 그때 아는분이 연락이 와서 웹디자이너로 짧게 몇 개월 일하다가 그 다음해 4월에 정식적으로 팬시 캐릭터 디자인 일을 한거죠. 졸업을 10월에 했으니 6개월이 걸린거네요.


인턴쉽 준비와 웹디자인 외도(?)를 빼면 연초부터 정식적으로 입사지원을 한거네.
그렇다고 봐야죠.


첫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참 많은 고민이 있잖아. 특히 민경이 같이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은 더 많이 고민스럽고. 본인이 경험을 했으니 조언을 해준다면.

사실 진짜 미래가 원하는데로 흘러간다면 좋겠지만 현실성이 없는거잖아요. 하지만 보장은 없지만 계속 원하는 바를 생각하면서 행동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저도 캐릭터 디자인 과정을 하면서 항상 제가 원하는 미래를 생각했고 그 미래를 위한 목표를 계속 주시했어요.
그러면 그걸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각이 나오고 거기에 맞춰 행동할 수 있더라고요. 자신이 가고 싶은 회사를 설정하는 문제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되고요, 그렇게 회사에 맞게 준비를 하는 것도 가능성을 높이는 굉장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회사를 지원하고 연락이 안 오더라도 “언젠가는 되겠지”라는 긍정의 생각으로 더 많이 준비하고 지원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이 말을 하다보니 기억이 나는게 한참 일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부산에 내려갈까 엄마한테 말한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난 니가 서울가서 무는 못 베도 단무지라도 베고 올 줄 알았더니…알아서 해라” 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서울에 올라온 본연의 목표가 떠올랐고 다시 마음 다잡았죠.
뭔가 안주하면서 있기보다는 항상 내가 원하는 걸 생각하면서 준비를 하면 기회는 오더라고요.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릴로&스티치잖아.지금도 변함없어?
지금도 좋아해요. 바뀌지 않았어요. 하하하


"민경이가


첫 회사 퇴사 후 바른손에서 1년간 일했잖아. 디자이너 민경이에게 바른손이 남긴 건.
음. 저는 해외 크라프트팀에 있었거든요. 더 다양하고 넓은 시각인 것 같아요.
그리고 좀 더 탄탄해진 실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아쉬운점은 있었어?
저는 주로 영국쪽 일을 했는데요, 해외시장을 보면 하고 싶은 디자인이 정말 무궁무진해요.
영국에서 진행되는 페어가 있으면 전시 출품과 연계해서 작업을 하고 그랬는데, 그런 작업을 하다보니 더 많은 스타일을 못해보고 나온게 무척이나 아쉽죠.



50이 되면 작가가 되서 동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그걸 위해 지금은 경험이 충분히 필요한 나이잖아요.
경험을 통해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알게 되었죠.


바른손을 나온 이유는 뭐야?
멋진 디자인은 많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다른 분야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물론 고민도 많이 했죠. 무척 마음에 들었던 직장이었고 안정적인 직장을 옮긴다는게 쉬운일은 아니니까요. 결론은 또 도전해 보자 였어요.


디자이너로 근무하면서 만든 디자인물로 가장 기억에 남는건 뭐야?
크라프트군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12인치짜리 포장 디자인인데요, 캐릭터로 패턴도 디자인하고 스티커도 제작되었죠. 세부 제품군도 재미 있거든요. 작업하면서 제일 힘들었지만 그 만큼 제일 만족도도 좋았어요. 집에 소장하고 있죠. 아! 이 작업물과는 별개로 제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었는데 어떤 블로그를 봤더니 이쁘다고 올라와있더라구요. 제가 디자인한걸 쓰고 있는걸 보니 기분이 묘하고 좋더라구요.


"민경이가


정글에 처음 문을 두리리던 3년전의 민경이와 지금의 민경이가 가장 달라진건 뭔거 같아?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부딪치면서 오뚜기처럼 일어설 수 있는 능력, 맷집이 생긴 것 같아요.
너무 아름답고 밝고 예뻐 보이던 일들이 사실은 무척이나 힘든 과정을 거쳐서 나온다는걸
처음에는 몰랐는데 그걸 차차 알아가면서 저도 강해져야 하더라고요. 저렇게 되야지.
계속 발전하고 있는거 같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계속 발전하고 있는 민경이지 그때와 지금이 다른 거 같지는 않아요. 저는 결국에는 나이가 50이 되면 집에 앉아서 작가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거든요. 그걸 위해 지금은 경험이 충분히 필요한 나이잖아요. 경험을 하면서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알게 되었죠.


동화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는게 목표라고 했는데 그 꿈은 이뤄져 가고 있니?
그 노선이 아직까지는 막연해요. 인생에 있어 최종의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지금 겪어나가는 경험과 과정을 통해서 통해서 나중에 그림그릴 소재와 할 이야기가 많아 졌으면 좋겠네요.


지치거나 현실과 타협하게 되는건 있어?
현실과 타협하는 건, 돈.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예전에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저 쓰기만 해주세요”였다면 이제는 아니죠.
저도 미래를 계획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부분이 필요하고요. 그게 현실과의 타협이라 생각해요.


현실적으로 힘들 때 그걸 극복했던 민경이만의 노하우는 뭐야?
계속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 해요. 모든 위대한 사람은 다 너무 힘든 과정을 겪었다. 그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계속 안정정이면 딱 그 만큼에 머무른다. 그걸로 최종적인 마인드컨트롤을 하죠. 지금 겪는 이 고통을 통해 어제보다 더 낳은 사람이 되고 있다라고 스스로 만족하는 거죠.


루키데이즈 친구들은 잘 있지?
네. 이제 키워나가려고요. 회사 다니면서는 못했는데요. 이제는 좀 해보려고요.


"정글에서



통상적이지만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디자인은 다수한테 호응을 얻어야 좋은 디자인이잖아요.
최대한 많이 수용하려는 자세가 중요하죠.
그걸 내 색을 가미해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요.



민경이만의 철학, 디자인관은 뭐야?
커뮤니케이션. 통상적이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실무에서 일해보면서 알게 되었어요. 나만 만족한다고 해서 좋은 디자인도 아니고 위에 분들이 만족 한다고 해서 좋은 디자인도 아닌거죠. 디자인은 다수한테 호응을 얻어야 좋은 디자인이잖아요. 최대한 많이 수용하려는 자세가 중요한거 같아요. 그걸 내 색을 가미해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항상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거고요.


그림 그리는게 여전히 재미있고 행복하니?
네. 보는것도 좋고. 낙서하는것도 좋고.


"민경이의


민경이의 디자인에 가장 영향을 많이 준 그 무엇.
저는 굳이 딱 한가지에 영향을 받은건 아니고요. 서점에 가서도 잡지건 동화건 가리지 않고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잡식성이라 생각되는데요, 저를 둘러싼 모든걸 보는걸 좋아하고 또 영향을 받겠죠.


그럼 민경이한테 영향을 준건 지구라고 할까?
지구. 하하하


좋아하는 디자이너나 소개해주고 싶은 디자이너가 있어?
캐릭터 : 제레미 빌 http://www.jeremyville.com
일러스트 : 도모닷컴 http://www.tomo-com.com
일러스트 : 아이코 http://www.icico.jp
웹디자인 : 그리드 베이스 http://grid-based.com


"민경이가



경험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설레임을 가지려 했으면 좋겠네요.
도전정신이라고 해야하나.
오히려 돌아가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요.



지금도 디자이너를 꿈꾸며 하루 하루 열심히 살고 있는 후배들이 많아.
그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니? 선배로서 말이지.

일단은 아까 말한데로 자기 독단적인 아집을 갖긴 보다는 넓은시야를 가지려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캐릭터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했지만 캐릭터만을 고집했다면 지금의 저는 없겠죠. 한길만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잠시 돌아가도 되니까요, 경험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설레임을 가지려 했으면 좋겠네요. 도전정신이라고 해야하나. 저도 돌아가고 있지만 오히려 그렇게 돌아가기에 느낄 수 있었던 것이 많은거 같아요. 처음에 생각하고 정한 본질만 흔들리지 않으면 됩니다.


aechee라는 아이디를 쓰고 도메인까지 있어. 이게 무슨 의미야?
내 도메인을 뭘로 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나하면 떠오르는 단어로 하려니 어렵더라고요.
옛날부터 제 기침소리가 특이해서 사람들이 기억을 많이 했어요.
“에잉취”라고 기침을 하는데 그걸 담은 거에요. 정리하자면 뜻은 시원한 제 기침소리죠. 하하하


근래 들어 가장 좋았던 그 무엇. 영화도 좋고 노래도 좋고 그림도 좋고.
“줄리앤줄리아”라는 영화가 좋았어요. 내용이 줄리라는 여자가 있는데 줄리아라는 유명 요리사의 레시피를 1년이란 기간을 정해놓고 정복한다는 내용이에요. 줄리라는 여자는 30살이 다가오는데 생각해보니 뭘 정해놓고 이뤄본게 없는 거에요. 그래서 시작한거죠. 결국은 1년동안 그걸 이뤄요.
그 레시피 정복기를 매일 블로그에 올렸는데 그게 유명해진거죠. 뉴욕타임즈에도 취재를 하게 되고 줄리아 요리사한테도 그 소식이 전해지죠. 애초에 본인이 꿈꾸던게 작가였는데 그 일을 계기로 그 꿈을 이뤘어요. 영화를 보면서 많이 느꼈어요.
나도 스스로 뭔가를 정해놓고 끝까지 온전히 마쳐야겠다. 그래야 된다. 뭐.


"영화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디자인이 있어?
새로 한다기보다는 예전에 했던 웹디자인도 계속 해보고 싶어요. 웹에 대한 매력이 있어요.
정해진 공간에서 많은걸 표현할 수 있어서요.


인터뷰를 통해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니?
저 스스로한테 할게요. 하하하~ 저는 지금도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발전하고 있어요. 성장할 사람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말이죠.
앞으로도 기존에 겪었던 일보다 더 힘든 일이 닥치거나 내가 생각했던 데로 일이 안 풀리더라도 늘 항상 밝게 잘 될 거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나아갔음 좋겠어요. 스스로한테 하고 싶은 말이에요.


멋진데.
하하


아. 아까 못한 자기소개는 어떻게 할까?
에췹니다라고 해주세요. 하하하
절 장황하게 소개할 레벨이 아니잖아요.




/ 2011. 4. 25



"서민경" 서민경

캐릭터 디자인 스페셜리스트 1기 출신으로 스토리박스 팬시 제품 디자이너,
바른손 카드 디자이너를 거쳐 현재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어릴 적 화가셨던 친구의 어머니를 보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꿈이 되었고
우연찮은 기회에 서울로 올라와 한단계 한단계 디자이너의 꿈을 구체화 시키고 있다.
감각있는 디자인, 다채로운 색상에 관심이 많고
나라별 각양각색의 디자인을 찾아보는 것이 취미인 그녀는 천상 디자이너다.

홈페이지 http://www.aechee.com
이메일 aechee@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