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글씨를 쓴지 벌써 20년이 되었네요.
술통의 강병인 선생님, 필묵의 김종건 선생님, 디자인심화의 이상현 선생님과 함께 한국 캘리그래피를 일으켜 세운 4인방으로 유명하신데요. 어떤 계기로 캘리그래퍼가 되신 건지요?
제가 글씨를 쓴지 벌써 20년이 되었네요. 대학에서 오랫동안 강의를 하다가 2002년 캘리디자인을 설립하고 국내 최초로 캘리디자인 샵을 개발했습니다. 인터넷으로 누구나 손쉽게 폰트가 아닌 손으로 제작된 글씨를 사용하게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캘리디자인샵으로 대한민국창업대전 장려상을 받았고 이후 캘리디자인을 이원화, 확장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서예와 캘리그래피는 무엇이 다른 건가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반드시 지켜야 할 글씨 쓰는 법'이 있습니다. 이 법을 알고 쓰는 것을 진정한 서예라고들 합니다. 또한, 재료도 지.필.묵.연을 기본으로 사용합니다. 반면 캘리그라피는 법 대신 '디자인 컨셉'에 따라 글씨를 써야 하기에 '디자인에 대한 이해'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재료도 붓을 비롯해 나무젓가락, 면봉, 펜 등 재료에 구애받지 않고 컨셉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합니다.
그동안 작업하신 대표작들과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작업이 너무 많아서 어느 것만 뽑으면 다른 작품들이 서운해 할 텐데요.^^ 굳이 뽑는다면 17대 대통령 취임식 슬로건과 선거포스터, 2006월드컵 포스터, 광화문광장 개장식 슬로건, 인천대교 개통식 슬로건, 여성시대, 비달사순CF, 김소형본다이어트, 지누션앨범, 한국화장품, 오리온, LG생활건강, LG화학지인, 농심, 더페이스샵 등에서 작업한 것들이 있고요. 요즘 유행하는 참살이탁주와 제가 3년간 고생하면서 지은 책 <캘리그라피>(안그라픽스, 2008)가 기억에 남네요.
자신이 디자인하는 것에 들어가는 캘리그라피는
배경 이미지를 보면서 작업할 수 있기에 훨씬 더 컨셉에 잘 맞는
캘리그라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캘리그래피를 배우면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될까요?
우선 디자이너가 캘리그라피를 배우면 디자인에 바로 응용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이 디자인하는 것에 들어가는 캘리그라피는 배경 이미지를 보면서 작업할 수 있기에 훨씬 더 컨셉에 잘 맞는 캘리그라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또한, 요즘에는 캘리그라피가 안 쓰이는 곳이 없어서 디자이너에게 캘리그라피는 거의 필수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캘리그라피를 조금이라도 알아야 폭넓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오게 된 거죠.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캘리그라피를 배우는 디자이너들이 무척 많아졌습니다.
자붓을 들고 무작정 쓰거나, 한글을 흘려 쓴다고
모두 캘리그라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캘리그래퍼로서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붓을 들고 무작정 쓰거나, 한글을 흘려 쓴다고 모두 캘리그라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캘리그라피에도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좋은 캘리그라피와 나쁜 캘리그라피가 있습니다. 한글에 대한 고찰과 캘리그라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알아야 디자인과 캘리그라피가 만나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무작정 아무런 생각도 없이 손으로 써서 디자인에 접목한다면 오히려 디자인에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한글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캘리그라피다'라는 평을 듣고 있는데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막 쓴 캘리그라피는 오히려 한글을 파괴하는 어이없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 분들은 캘리그라피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배움의 자세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2010.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