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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웹디자이너 서혜
"햇님이 잘하죠.", "햇님이 열심히 해요.", "햇님이 일본에서 전시한대요." 작년부터 정글의 웹 담당 매니저와 강사님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이름이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이름이 '햇님'인줄로만 알았던 그녀의 성명은 '서혜'였다. 보통 다른 매니저들이 학생들과 친해지면 편하게 이름을 부르거나 '~씨'라고 하는 반면, 항상 학생들에게 '~님'이라고 존칭을 사용하는 웹 담당 매니저가 '서혜님'이라고 부르다가 점점 줄어들어 '혜님'이 되자, 듣는 이에게는 ‘햇님’처음 들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인터뷰 후 그녀를 계속 "햇님"으로 적고 싶어졌다. 짧은 디자인 경력에도 불구하고 지칠 줄 모르는 추진력으로 작가와 디자이너 사이를 오가며 활약하고 있는 그녀를 마주 대하는 것은 마치 아직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무한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진 에너지 그 자체를 마주 대하는 것만 같았고, 그 에너지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호기심으로 세상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바라보고 싶어하는 아침 햇살의 따스함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인터뷰가 끝나자 마자 쉴새 없이 자신의 은사에게 다음 작품의 구상과 아이디어를 얘기하며 조언을 구하는 열성을 보면서, 필자는 머지않아 그녀의 아침이 밝아올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 정영준 |
Part1. 스승과 제자 | 2009_06_18 * 본 인터뷰는 웹스(웹디자인 스페셜리스트) 14기 출신인 서혜씨와 서혜씨를 직접 지도했던 아카데미정글 허순 강사님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하고 싶었던 것을 하는 거라서 두려움보다는 설레임이 컸던 것 같아요. (허순)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니 새삼스럽게 잘 지냈냐는 말을 하기도 그렇네.. (서혜) 네^^ 선생님도 잘 지내셨죠. 하하- (허순) 음- 뭐부터 물어볼까… 방년 31세, 작년부터 했으니 서른이 되서야 디자인 공부를 새로 시작한 건데, 늦었다는 것 때문에 겁나지는 않았어? (서혜) 겁은 안 났어요. 겁이 났다면 아마 안 했을 거예요. 무엇보다 하고 싶었던 것을 하는 거라서 두려움보다는 설레임이 컸던 것 같아요. 최근에 했던 전시(Korea Design Week 2009 신진디자이너 부문 참가)에서도 제가 제일 나이가 많았어요.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대학에서 디자인 전공을 하고 막 졸업한 친구들이었는데, 저보다 나이가 어리더라도 모르는 것들은 가서 물어보고 배우고 그랬거든요. 모르는 것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 모르면서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창피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처음 디자인을 시작하려고 마음먹고 정글에 왔을 때도 두려움은 없었죠. 아시겠지만 제가 웹스(정글 웹디자인 스페셜리스트) 14기 중에서도 두 번째로 나이가 많았거든요. (허순) 다른 일을 하다가 갑자기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뭐였지? (서혜) 원래 한국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프로그래머로 일을 했었어요, 하지만 웹 디자인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이 있었고, 나름대로 공부를 해서 웹 디자인 기능사 자격증을 딴 다음 일본에서 일을 받아서 했었죠… 그런데 제가 (디자인의) 기초가 안된 상태에서 책 만보고 툴만 배워 디자인 일을 하다 보니 뭔가 계속 부족함이 느껴지더라고요. 그 답답함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었어요. 근데 그게 대체 뭔지는 모르겠고… 그러다가 아카데미정글을 작년에 알게 되어 큰맘 먹고 하던 일들을 다 정리하고 공부를 시작했죠. (허순) 아카데미정글은 어떻게 알게 됐는데? (서혜) 당시 포토샵 일러스트를 하시는 뽀얀(김은혜) 선생님 책을 샀었는데, 뽀얀 선생님이 아카데미정글에서 강의 하신다는 걸 알게 되어 사이트를 찾아보게 됐어요. 그런데 이것저것 둘러보다 보니 뽀얀 선생님 강의 대신 덜컥 웹스를 신청해 버린 거죠. 요즘도 듣고 싶은 강의가 너무 많아서 걱정이예요. 하하- (허순) 전시는 지금까지 총 몇 번이나 한 거지? (서혜) 도쿄 디자인 페스타를 오다이바에서 한 번 하고, 하라주쿠에서 한 번 하고, 한국에서는 코리아디자인위크 때 한 번하고, 총 3번 했어요. 계속 제 이니셜로 작업해오다가 코리아디자인위크에는 알파벳을 시도했는데, 목표는 26자를 전부 완성하는 것이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17자밖에 완성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곧 26자 모두 완성시킬 거예요. 계속 작업 중입니다. (허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아카데미정글에서는 디자인을 배웠는데, 현재 작품은 컴퓨터공학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잖아. 제 3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기존에 배웠던 코드지향적인 부분들을 모두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해? (서혜) 포기 안 했고요. 저만의 색깔을 찾아서 전시를 하다 보니까 지금의 작품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것들을 계속 2D 그래픽으로만 남겨놓을 생각은 없어요. 다른 영역들과 계속 접목시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생각이예요. 내년 뉴욕에서 진행할 전시는 사용자와 직접 교류를 할 수 있도록 미디어아트적인 요소를 접목시키고 싶어요. 지금은 2D지만 제 작품들을 3D로 구현하여 움직이고 직접 만질 수 있는 전시로 구성하는 것이 목표죠. 무엇이든 안될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항상 찾아보고 적극적으로 시도해 보는 것 (허순) 디자인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전시 참여나 공모전 출품 같은 적극적인 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서혜) 제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부끄럽지만… 코리아 디자인 위크에 참여 작가로 선정되었을 때, 한국에서 전시경력이 한 번도 없고 디자인 경력도 일천 하지만 오로지 작품만 보고 총감독님이 저를 선정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전시를 했을 때 실제로 많은 분들이 이런 작품을 외국이 아닌 국내에서 본적이 없으시다고 좋아들 하셨어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는 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또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안될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항상 찾아보고 적극적으로 시도해 보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명심하게 되었죠. (허순) 국내에서는 생소하겠지만 외국에서는 파티클을 이용한 영문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을 이미 많이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알파벳을 이용해서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이 메리트가 있을지 몰라도 영미권에서 활동을 하려면 그들이 함부로 할 수 없는 한글을 이용한 작업들이 더욱 메리트 있지 않을까? 뉴욕에서도 전시를 할 생각이라면서 어떻게 생각해? (서혜) 사실 작품에 한글이 아닌 알파벳을 이용하게 된 계기는 처음 참여했던 전시가 디자인 페스타였기 때문이었어요. 디자인페스타는 일본에서 열리지만 국제적인 행사이기 때문에 국적에 상관없이 관람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친숙한 문자를 사용해야 했거든요. 영문 알파벳을 통해서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한글 작업은 꼭 할 생각이고 앞으로 외국에서 전시를 하게 되면 한글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반드시 넣을 생각이지만, 제대로 작업하기 위해서는 한글에 대한 공부를 제가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대로 공부해서 한글에 대한 아름다움을 바르게 알려줘야죠. (허순) 지금까지는 수작업에 의존한 아날로그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데 모니터나 기타 디지털 디바이스에서 구현될 수 있는 디지털 작업들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서혜) 이제 막 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이나 수작업 방식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당분간은 지금의 제 스타일을 좀더 발전시키고 확고히 하는데 노력할거예요. 애프터이펙트 등을 활용한 디지털 영상 작업들에도 욕심이 있는데,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올해 열심히 공부해서 내년부터는 차츰 그런 작업들을 시도해 볼 생각이예요. 아카데미정글에서 곧 Actionscript catalyst 과정이 생길 것이라고 들었는데 이런 인터렉티브한 요소들을 배워서 제 디자인에 직접 접목시키고 싶어요. 올해 열심히 공부해서 내년 뉴욕 전시에서는 꼭 적용시켜야죠.^^ (허순) 웹디자인을 하기 위해서 일본에서 회사도 그만두고 한국에 왔는데, 현재는 작가로서 전시나 공모활동을 주로 하고 있잖아. 원래부터 작가를 할 생각이었어? 아님 목표가 바뀐건가? (서혜) 사실 처음 아카데미정글에 지원했을 때는 전문적인 웹에이전시에 취업을 하고 싶었어요. 아카데미정글이 웹 교육으로는 워낙 유명하고 수료생들이 메이저 에이전시로 많이 취업되기 때문에 지원했던 거죠. 그런데 공부 하는 중에 참여하게 된 도쿄 디자인 페스타가 계기가 되어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오게 된 것 같아요. 준비하는 기간은 무척 힘들지만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전시를 해본다는 것은 정말 신선하고 충격적인 경험이예요. 학생들은 웹스 끝나고 수료식 할 때 강의실에서 발표회 하는 것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거든요. 근데 첫 참여 전시가 디자인 페스타였으니… 전시의 마력에 푹 빠져버린거죠. 전시를 하면서 자신을 알리고, 작업한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 너무 가슴 두근거리는 순간들이었어요. 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잖아요.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도전이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던 거죠. 하지만 취업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저는 여전히 작가일 뿐만 아니라 디자이너예요. 현재도 일본에서 계속 웹디자인 일을 받아서 하고 있고요. 그러니 목표가 바뀌었다기 보다는 하나 더 추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죠. (허순) 작가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장점과 단점이 있다면? (서혜) 일단 장점은 제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면서 타인과 소통할 수 있다는 거요. 제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그런 것을 보면서 제가 또 보람을 느끼고요. 단점이라고 한다면, 작가로서의 조바심이랄까… 자꾸 다음 작품을, 새로운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업하는 것에 시간을 쏟다 보면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거죠. 그런데 새로운 작업을 하기 위해선 또 새로운 것을 공부할 시간이 필요하고… 무언가를 기초부터 배워나가기 시작하면 또 이걸 언제 다 배워서 작품을 만들지 싶고… 프로그래밍이던 디자인이던 시작을 하면 결코 중간에 포기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하면서도 계속 갈등은 있어요. 너무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허순) 그건 작가로서의 단점이라기 보다는 네 성격상의 갈등 같은데. ㅎㅎ- 조금 현실적으로 접근해서 작가를 하면 경제적인 차원에서 힘들지는 않나? (서혜) 아, 물론 그렇죠. 그래서 디자인 일도 꼭 해야 하죠. 하하- 물론 그렇다고 디자인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는 건 아니고요.^^;; 작가로서 밥벌이를 하려면 일단 작품이 팔려야 하는데 그러기엔 제가 이제 막 시작하는 병아리 작가니까요. 아무래도 힘들죠. 그리고 지난번 전시 때는 작품을 사겠다는 분이 있었는데도 결국 팔지 못했어요. 작품을 만들 때 디자인처럼 이건 얼마 하고 견적을 내고 만드는 게 아니고 솔직히 팔겠다는 생각 조차 없이 작업한 것들이라 막상 누군가가 사겠다고 하니 얼마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작품을 돌아보니 내 자식을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보내는 것 같아서 도저히 못 팔겠더라고요. ㅎㅎ- 그런데 슬슬 전시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작품이 쌓이기 시작하니까 이제는 좀 걱정이 되요. 지금도 집에 가면 방안에 거실에 전시했던 작품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는데 전시 몇 번만 더하면 작업할 공간도 부족할 것 같아서 이제는 사겠다는 분 있으면 꼭 팔아야 할 것 같아요. 하하- 그나마 다행인건 제가 순수하게 파인아트를 하거나 수작업 일러스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도 하다 보니 전시에서 좋은 작품들을 선보이면 자연스럽게 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거예요. 코리아디자인위크 전시를 계기로 잡지에 몇 번 실리기도 했고, 한일 합작 드라마 OST의 앨범 자켓 디자인도 기획 중이거든요. 또 고등학교 미술교과서의 문자디자인부분에 제 이름과 작품이 실리기로 예정되어 있고요. 제 궁극적인 목표는 제 작품을 활용한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글로벌 브랜드로 성공시키는 거예요. (허순) 잘됐구나. 멋진 디자인이 나오길 기대하마.^^ 하지만 그렇게 특정 브랜드나 상품에 자신의 작품이 적용될 때는 전시장에서 그 작품을 작품으로서 직접 보는 것과는 달리 브랜드나 상품의 특성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작품의 아이덴티티가 곡해되거나 훼손될 수도 있을 텐데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서혜) 아이덴티티 자체가 곡해되거나 손상되는 일이라면 하지 않겠죠. 그건 무척 속상하죠. 그렇게 되지 않으면서도 그 브랜드나 상품을 더욱 돋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결국 ‘디자인’이니까… 노력해야죠. 하지만 어찌되든 처음 기획단계부터 철저하게 계획되지 않고 그저 작품 모티브를 따와서 상품에 접목시킨다는 정도라면 분명 손해는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제 궁극적인 목표는 제 작품을 활용한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글로벌 브랜드로 성공시키는 거예요. 제 작품이 앞서 말한 것처럼 순수한 파인아트, 그러니까 예술의 범주에 속해 있는 작품이 아니라 디자인의 범주에 속에 있는 작품들이다 보니 상품이나 디자인에 다양하게 접목시킬 수 있는 코드들이 무척 많은 것 같아요. (허순) 그러려면 우선 유명작가로 성공해야겠네.^^ 아직은 먼 얘기겠지만, 글로벌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한 국가를 벗어나 글로벌 무대에서 작가나 예술가로 성공하려면 단지 실력만 있어서는 안되거든. 물론 정말 천재적이라거나 타의 추총을 불허하는 정도의 실력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천재까지는 아니어도 일반을 뛰어 넘는 실력에 더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만한 +알파가 더 필요해. 파격적인 작품뿐만 아니라 기행으로도 유명한 앤디워홀, 데미안 허스트 같은 작가들처럼, 최근에 방한한 레이디 가가 같은 뮤지션도 그렇고 웹이나 플래시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유명한 죠슈아 데이비스 같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지. 그런 점에서 본인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뭐라고 생각해? (서혜) 음… 음…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뭔가 찾아봐야겠는데요. 하지만 저는 우선 실력을 좀더 키워야겠어요. 하하- (허순) 아니지. 실력을 키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고. 그런 특별함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닐뿐더러 실력이 밑바탕 된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거든. 지금부터 자신을 잘 살펴서 차근차근 나만의 특별함을 찾고 계발해 나가야 하는 거지. 나와 한 몸처럼 일체화 되는 이미지를 만들어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깊이 각인될 수 있도록 아이콘화 하는 거야. (서혜) (메모지를 꺼내 재빨리 끄적인다.) 네… 네…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전시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작품이 있어야 하고, 그것도 남들과는 차별화되는 것이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허순) 갑자기 강의가 되버렸네. ㅎㅎ 각설하고, 한국에 있으면서도 처음 전시를 일본에서 참여 했는데 그 계기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겠어? (서혜) 전시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작품이 있어야 하고, 그것도 남들과는 차별화되는 것이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에는, 웹스 14기의 수료 시점이 도쿄 디자인 페스타 개최 시점과 맞닿아 있어서 그걸 계속 염두에 두면서 몇 개월 동안 차근차근 작품을 준비하다 보니 결국에는 전시를 할 수 있었죠. 제가 전문 작가도 아니었고 디자인도 처음 접하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계획과 굳은 결심, 행동 없이 그냥 해볼까 하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면 결코 할 수 없었을 거예요. 방법적인 측면에서는 저도 특별한 것은 없었어요. 다만 일본어를 할 줄 알다 보니 일본 디자인 페스타 사이트(http://www.designfestagallery.com)를 보고 정보를 얻는 데는 다소 편했죠. 전시기간이나 참가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나와있는데, 사실 꼭 이곳이 아니더라도 디자인 페스타는 워낙 유명한 디자인 축제이고 국내에서도 참가하려는 디자이너들이 많다 보니 포탈에서 검색을 해보셔도 여러 가지 정보들을 쉽게 얻을 수 있어요. 싸이월드에는 공식적인 국내 디자인 페스타 카페(http://www.cyworld.com/designfesta)도 있어서 궁금한 점들을 메일이나 게시판을 통해 알아 볼 수도 있고요. (허순) 전시뿐만 아니라 공모전에도 계속 출품하고 있는데, 일본하고 한국의 차이점이 있는 것 같아? (서혜) 말이 다르죠. 하하- 농담이고요. (허순) 아, 그거 정말 중요한 포인트인데. 말이 다르면 낼 수가 없지. ㅋㅋ (서혜) 한국과 일본의 차이라기 보다는 한국이든 일본이든 공모전마다의 특성이 다른 것 같아요. 공모전의 주최가 어디인지 주제나 컨셉이 무엇인지 배경이나 지향점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각기 다르다고 보고요. 다만, 지원자의 입장에서 한국과 일본 공모전의 차이점이라면 ‘상금’이죠. 한국은 상금을 수상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는 편이라면 일본은 일등에게 몰아줘요. 예를 들어 일등 상금이 10만 엔이라면 2등 상금은 1~2만 엔 밖에 안되죠. 거기다 환율차이도 있다 보니… 외화벌이 하려면 꼭 일등을 해야 해요. ㅎㅎ '이제부터 디자인 해야지’ 라고 마음먹고 디자인을 하는 게 아니라, 매 순간 숨을 쉬듯이 디자인에 대해 생각하는 거예요. (허순) 현재 본인이 갖고 있는 디자인에 대한 마인드를 얘기해 주겠어? (서혜) 아카데미정글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은 그냥 환상 같은 거였어요. 디자인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거기에 관심이 가고 하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아카데미정글에 와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어요. 사실 제가 작품을 만들고 전시에 참여를 할 수 있다는 것 조차도 정글에 와서 알았고요. 물론 지금도 ‘디자인이 뭐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은 결코 아니고 정말 평생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지금 제가 갖고 있는 디자인 마인드에 대해 말씀 드리자면… 뭐라고 할까… 똑 떨어지게 표현을 할 수는 없지만 계속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거예요. 어느 순간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를 켜고 ‘이제부터 디자인 해야지’ 라고 마음먹고 디자인을 하는 게 아니라, 매 순간 숨을 쉬듯이 디자인에 대해 생각하는 거예요. 길을 걷다 무언가 보게 되면 저걸 어떻게 내 작품에 적용시켜 볼까 생각하고 무슨 얘기를 듣거나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항상 메모하고 사진도 많이 찍고 집에 와서 리뷰하고… 그런 것들을 계속 반복하는 거죠. 지금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던 것들도 나중에 다시 보면 새롭게 다가올 때가 있잖아요. 집에서 혼자 TV를 보면서 심지어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도 메모를 할 때가 있어요. ‘저거 나중에 내 작품에 소재로 써야지’ 하면서요. 그게 남들이 볼 때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저한테는 이제 호흡하듯 자연스러운 일상이예요. (허순) 자, 이제 마지막 질문! 이번 인터뷰를 읽게 되는 사람들은 현직 디자이너나 업계 관계자들 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글에서 공부를 하고 있거나 공부를 시작할까 고민하고 있는 비전공자, 혹은 타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을 꺼야. 자신도 비전공자였고, 그것도 뒤늦게 전혀 다른 분야로 뛰어들게 된 선배의 입장에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마디 한다면? 비전공자들은 디자인이 하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미련까지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지, 내가 과연 즐기면서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짧고 한 번뿐인 인생을 자신이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디자인에 대한 지식 없이, 단지 옛날부터 무작정 하고 싶다는 동경과 의지만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저도 아직 가야 할 길이 까마득한 새내기지만 어찌되었든 디자인계에 한 발 내딛기는 했거든요.^^ 전공자가 아니라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다르게 생각할 수 있고 더 잘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믿습니다. 너무 조바심을 내는 것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간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하게 되면 어느 순간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의지와 용기 그리고 열정이 있다면 누구라도 디자이너로써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Part2. 한글이 다가오다 | 2009_08_24 인터뷰를 끝낸지 한참이 지났지만 여러 가지 일에 치여 기사를 업데이트 하지 못했던 매니저에게 햇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Vidak에서 주최하는 <한글 주련전>에 출품했으니 개막일에 오라는 초대의 메세지였다. 미안한 마음을 한 가득 품고 전시장에서 바뀐 근황과 작품에 대한 추가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이번엔 꼭 업데이트 하겠다는 굳은 다짐과 함께 ㅠ_ㅠ;; / 정영준 (준) 지난 인터뷰 이후 꽤 시간이 지났는데 근황에 대해 말해주세요. 현재 진행한 작업들은 이지아, 체리필터, 일한 합작 OST 의 앨범 자켓 디자인이 있고요. 일본에서 웹사이트 하나의 전체적인 디자인을 의뢰 받아서 기획단계에 있고… 또, 준비하고 있는 전시가 좀 많아졌어요. 오늘 개막한 <한글 주련전>은 8~10월에 걸쳐서 북촌문화센터, 근현대디자인박물관 갤러리모디움, 서울디자인올림픽에서 진행되고요. 성남시에서 주최하는 <성남 디자인 페스티발>에도 참여하는데 약 70여 명의 신진작가들이 모여서 재활용을 주제로 작품을 준비했어요. 전시는 20팀이지만, 디자인 마켓 50팀과 함께 북카페와 여러 이벤트가 준비 중이예요. 저는 설치작품 (‘성남디자인페스티발’ 한글 타이포 일러스트작업, 전구디자인, 전시장 내 그래픽)으로 전시를 하고, 마켓에서 디자인 상품을 판매할 예정이고요. 9월 18일에서 20일까지 3일간 진행되니 꼭 와보세요.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들을 만나보실 수 있으니, 오시면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게다가 무료이기까지 하고요! ^^ 또, KT 주최로 ‘olleh KT’라는 새로운 로고를 디자이너들 성향에 맞추어 재해석하는 전시에도 참여하게 되는데, 제 스타일대로 마음껏 기업 BI를 디자인하면 되기 때문에 무척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10월 중에 2주 동안 전시가 될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11월에는 현재 아카데미정글에서 배우고 있는 프린트 메이킹 실크스크린을 활용해서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 이보다 더 소중한 목표는 없다고 봐요. (준) 앞서 인터뷰에서 허순 선생님으로부터 한글 작품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결국 한글을 주제로 한 전시에 참여하게 됐네요. 소감이 어떠신지? 너무 기쁘죠. 마침 Vidak회원이 된 후에 첫 전시가 <한글 주련전>이라니.. 처음 이 전시가 있다는 공지를 받았을 때, 너무 기뻤고,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야지..라고 결심했었는데, 그 결심에 맞는 만족스러울 만한 작품이 나와서 기뻐요. (준) 영문으로만 작업을 하다가 한글 작업을 시도했는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한데요. 크게 어려움은 없었어요. 오히려 더 즐거웠죠. 알파벳은 형태를 조금 왜곡시켜도 크게 이질감이 없었는데, 한글은 그 자체의 본래 형태를 유지해줘야만 의미가 통한다는 것이 달랐어요. 원래 그 자체도 완성도가 뛰어난 한글에 제 패턴을 입히니까 더욱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또한, 한글을 디자인하면서 한국인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왠지 더 세심하게 작업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진 않았어요. 그래서 한 글자를 몇 번이나 주제를 다르게 정해서 다시 그리곤 했었죠. 한글 작품을 보신 많은 분들이 영문보다 훨씬 매력적이라고 해주셔서 기분이 좋았어요. (준) 그럼 이번에 출품한 본인 작품에 대한 소개를 간단히 부탁 드려요. 음음.. 쑥스러운데요. 작품명은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죠. 이보다 더 소중한 목표는 없다고 봐요. 자신의 삶을 경영할 줄 아는 위대한 CEO는 지혜인이라고 봅니다. 한글이 패턴과 만남으로 인해서 더욱 아름다운 한글이 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준) 그 동안 참여했던 전시와 이번 전시의 성격은 무척 다른 것 같아요. 디자인 페스타야 워낙 개성 넘치는 젊은 디자이너들로 들끓는 행사고 코리아디지인위크도 신진디자이너부문에 참여를 한 것이라 개성 있는 스타일이나 톡톡 튀는 아이디어만으로도 어느 정도 어필을 할 수 있는 전시들이었지만, Vidak 전시의 경우 참여자들도 대부분 대학의 교수이거나 현직 디자이너인 경우가 많고, 전시의 취지나 주제도 디자이너 개개인의 성향과 개성을 살리기 보다는 어떤 메시지를 디자이너들의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혜 씨에게는 다소 무겁게 다가가지는 않을까 싶은데. 물론 예전에 했던 전시들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지만, 제 작품에 좀 더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주는 더 깊은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였기에 그런 의미에서는 <한글 주련전>에 참여할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준) 쉴새 없이 일을 꾸미고 있는데, 앞으로는 또 어떤 계획들이 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성공적인 뉴욕 전시를 위해서, 내년 초에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짧고 굵게 떠나요. 6개월 동안의 연수가 끝난 뒤엔 뉴욕에서 머물면서 전시를 할 예정이고요. 그 후엔 한국에서 미술공부를 조금 더 하고 내년 말에는 일본 타마 미술대학 그래픽디자인과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입니다. 그 뒤로는 일본에서 머물면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게 될 것 같아요. / 2009. 9.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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