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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NEWS 2009-08-19

지구정복을 꿈꾼다.
큐레이터 이희복

- 큐레이터 이희복

"지구정복을
2년전 일북에서 구경삼아 랄랄라 전시를 진두지휘하던 희복이의 카리스마는 대단했다. 모든 사람들을 부릴(?)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아이는 어느날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큐레이터를 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왜 하던 디자인을 계속하지 생뚱맞게 큐레이터야?"라는 생각보다 "딱이네!"라고 소리쳤다. 항상 호랑이 기운이 솟구치는 지구정복 뽁이가 말해준 이희복 이야기. / 쌈




유명한 그래픽디자이너 이희복이 아닌 큐레이터 이희복입니다.

처음 시작을 위한 필.수.코.스. 자신의 소개를 해줘.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복수전공은 의류학을 했는데 회사는 의류학 전공을 살려 갔죠.
거기서 3년 가까이 일을 했고 지금은 큐레이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끝? 이름이라던지 다른건 또 없어?
아...하하 이름은 이희복이에요. 근데 이 분야에서 그래픽을 하시는 이희복씨라고 너무 유명한 분이 있어 자주 오해를 받죠. 심지어는 일북 클럽 가입하는데 그 이희복이 이 이희복인줄 알고 가입하는 사람들도 꽤 있더라구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정확히 알려드려요. 그 이희복님은 남자분이고 저는 이쁜 여자랍니다. 참고로 그 분은 뉴욕에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잡화디자이너로 일했잖아. 원래 꿈이 디자이너였어?
원래는 의상디자이너였어요.
저희집이 대부분 의류쪽이거든요. 엄마는 의상실을 하셨고 친척분들도 의류쪽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죠.

근데 왜 전공은 시각디자인을 한거야?
아...사실(잠시 고민)
다 떨어지고 시각디자인과만 붙은거죠. 아하하
그래도 부전공으로 의류학을 했으니까.

아픈데를 찌른거 같아 미안하다.
아니에요. 원래 시각디자인과도 관심이 있어서 반반씩 지원을 했어요.
화실 선생님이 시각디자인과 출신이라서 그쪽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던거죠.


왜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전 좀 여유로웠어요.
미래에 대한 고민보다는 현재 내 생활에 충실하려고 했죠.


대학생활은 어떘어?

다른 친구들과 비슷할 것 같아요. 어느정도 놀았고 어느정도 공부했고.
좋아하는건 되게 열심히 했지만 그렇지 않은건 안 했죠. 하하

그래도 졸업은 재때 했잖아?
아...아니...학점이...하하하
그래도 전공이 두개 였으니 반학기 늦은건 당연하다고 저 혼자 생각했죠.

또 한번 아픈데를 찌른거 같아 미안하다.
다 지난일인걸요. 하하

대학 졸업반 때 진로에 대한 고민을 했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전 좀 여유로웠어요.
그래서 진로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었어요. 미래에 대한 고민보다는 현재의 생활에 충실하려고 했어요. 그런 성실함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미래도 온다고 믿었거든요.

어렸을 때의 이희복을 회상해본다면?
어렸을 적에 많이 아파서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기고 그랬어요.
초등학교 2학년때까지는 학교를 재대로 못다녔어요.
그래서 공부하는 습관도 재대로 들이기 어려웠죠. 당연히 공부를 못했고 그게 중학교까지 이어지고 그러다 보니까 중학교때 공부 못하는 친구들 있잖아요, 반에서 그런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어요. 근데 그런 애들이랑 어울리다 보니까 이상한 오기가 생기는 거에요.
공부를 잘해야겠다는 오기가 아니라 재대로 날라리가 되자는 오기.
그 동안 억눌려 있던걸 분출하고 싶었던 거죠. 물론 그때 당시 소심한 성격 때문에 좀 어정쩡한 날나리 생활을 했지만 그때 기억이 참 많이 남아요.
어정쩡하게 놀다보니 여전히 공부는 못했죠. 하하

어정쩡하게 고등학교까지 보냈겠네?
공부를 안해서 처음에는 재수하고 그냥 그런 대학을 갔죠. 근데 성공하고 싶었고 놀만큼 놀아봤기에 정신 차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편입을 한거죠.
그렇게 또 한번의 입시를 경험하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지금의 성격으로 바뀐거 같아요.


디자인도 물론 재미있긴 한데
저는 디자인에 대한 한계도 잘 알고 있었고
제 꿈을 위해서는
다른 분야를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는 판단을 한거죠. 장기적으로 봤을 때 회사를 그만 둔 이 시점이 적기라고 생각한거고.


잡화디자이너로 입사한 회사 생활은 어땠어?
회사가 외국계라서 국내 브랜드는 하지 않았어요. 맨체스터나 바르셀로나 같은 유명 클럽의선수들 저지나, 축구공 디자인 같은 것들을 주로 담당하던 회사였죠. 제가 담당 했던건 푸부나 본터치라고 미국쪽에서 유통되는 브랜드 모자나 지갑, 가방류를 디자인 했죠.
3년 가까이 일한건데 참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죠.

팀장까지 역임(?)했던걸로 알고 있는데
맞아요. 디자이너 신입으로 들어가서 너무 빨리 팀장이 된거죠.
다른 사람들은 초고속 승진이라고 부러워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쉬웠죠. 제가 1년반정도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팀장이 된 이후로는 디자인에만 집중할 수 없었거든요. 팀장의 역활이란게 디자인 보다는 팀웍이나 운영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니까요. 욕심 같아서는 디자인을 좀 더 하고 싶었는데 팀장이 되다보니 오히려 더욱 고민이 많아지더라구요.

그렇게 빨리 팀장이 되지 않고 디자이너로서 계속 일했다면 더 오래 다녔을수도 있겠네?
그쵸. 아마도.

큐레이터는 어떻게 하게 된거야?
그렇게 고민 끝에 회사를 나오고 고민이 많았죠.
다시 디자이너로 갈것이냐 다른 길을 찾을 것이냐. 다들 그런 고민 많이 하잖아요.
근데 디자인도 물로 재미있긴 한데 저는 디자인에 대한 한계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가진 꿈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다시 디자인을 하기 보다는 다른 분야를 경험 해보는게 좋겠다라는 판단도 들었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회사를 그만 둔 이 시점이 적기라는 생각도 들었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운명처럼 큐레이터를 해보는게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은거죠.
항상 그렇듯이 물 흐르듯이 저에게 기회가 다가온거죠.
물론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렇게 고민만 하기 보다는 일단 저지르고 부딪쳐 보자는 생각이 강했죠. 큐레이터로서 제가 굉장히 늦은 나이에 시작하는거라 그 만큼 요즘 공부를 많이 하고 있어요.

현재 큐레이터일은 만족스러워?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면서 배우는 것도 흥미롭고.
다양한 분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저에게 잘 맞구요.
근데 조금만 더 돈이 되면 좋겠어요. 하하하


멕시코의 공기, 풍경, 사람들 전부 다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그네들의 여유로움과 긍정적인 마인드가 참 좋았죠.


디자이너였던 시절 가장 기억에 남은 추억 하나만 말해줘.
멕시코의 추억. 회사에서 40일정도 출장연수를 보내준건데요, 그때까지 제가 비행기를 타본적이 없어요. 당연히 외국은 나가본적이 없었겠죠.
운명처럼 그렇게 처음 비행기를 타고 처음 외국을 나가는데 그 곳이 멕시코였던 거죠.
홀로 20시간 이상을 비행해서 간 그곳이 정말 무섭기도 했지만 참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하필이면 그날 제가 타고 있던 비행기가 고장이나서 국제 미아가 될뻔하기도 하고...
멕시코의 공기, 풍경, 사람들 전부 다 기억에 남아요. 아마 평생동안 남겠죠.
여자들의 육감적인 몸매도.하하

그 사람들이 되게 못사는데 행복지수는 세계 3위래요.
가보니 그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참 생활에서 많은 여유가 묻어나요. 항상 무엇인가가 바쁜 한국에서 나름 여유롭다고 생각한 저였지만 거기서 그런 여유로움에 그네들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경험 하면서 한층 더 성숙해 진거 같아요. 그래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아! 참 원색적인 색채도 제 마음속에 강렬하게 남아있죠.

"멕시코 "멕시코
"멕시코 "멕시코
<이젠 추억으로 남은 멕시코 사진>

우리가 만난게 2006년이니 벌써 3년이 흘렀네. 그때와 현재 달라진 점이 있어?
별로 없어요.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나이를 먹으니 조급함은 좀 생긴다는거.하하. 흐르는대로 여유있게 가는 스타일인데 나이를 먹으니 조금은 조급해지고 그만큼 욕심은 더 생기는거 같아요.

큐레이터 일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는 뭐야?
여름 특별기획 공포숲 전시. 여름 무더위를 잊게 해줄 쉽고 가벼우면서도 특별한 무언가를 생각하다 공포에 대한 기획을 하게 되었죠.
회화, 일러스트, 사진, 영상, 공연 등 정말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작가진들 그리고 작품에 대한 작품성 역시도 훌륭했고, 오프닝날 공포에 대한 퍼포먼스 공연 등 시각적 청각적 만족도가 좋았고, 관람객들의 반응도 무척이나 좋았어요.

"여름
< 여름 특별기획 공포숲 전시 현장>

오랫동안 운영을 하고 있는 일북을 소개해달라.
일러스트 커뮤니티에요.
이렇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일단 들어와서 직접 확인하세요. 하하

"ILLBOOK:
ILLBOOK: 일러스트여행
illbook.cyworld.com


그림을 아주 못 그리지는 않지만
그림보다는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걸 좋아했기에
일러스트 커뮤니티 운영을 시작 한거죠.


정작 일러스트 커뮤니티를 운영하지만 본인은 그림과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
솔직히 그림을 좋아해요. 그리고 그림을 아주 못 그리지는 않아요.
근데 그림을 너무 잘 그리는 사람이 많고 저는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활동적으로 움직이는걸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어찌 보면 7년동안 일러스트 커뮤니티를 운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약에 제가 그림을 잘 그렸고 그림에 욕심이 많았다면 이렇게 운영을 못했겠죠.
그런 생각으로 2002년도에 처음 일러스트 커뮤니티를 시작했고 그게 일북이었던거죠.
그땐 이렇게 커뮤니티 규모가 커질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아! 저 혼자서는 이렇게 오랫동안 운영할 수는 당연히 없었구요, 인덕이 많아서 참 많은 좋은 분들이 도와줬어요.
그 분들에게 항상 고맙죠.

그 동안 많은 일북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을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니?

지금 생각나는 사람은 김용관. 지금은 회화작가로 전향을 해서 이쪽 활동이 뜸하지만 일북 초창기때 저를 많이 도와줬어요. 참 무지했던 저에게 여러가지 도움을 줬죠.
욕심도 많고 실력도 좋은 친구라 뭐든 잘할 거에요.

"김용관님
< 김용관님 작품>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큐레이터를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니?
전혀요. 제가 하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항상 응원해 주세요.
예전에 친구들이 집에 와서 술 먹고 그랬어도 다 받아주셨어요. 하하하

일북을 통해서 그 동안 많은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아쉬웠던 점을 본격적으로 풀어보고 싶어 큐레이터가 되고자 한것도 있겠다.

그쵸. 그런 영향도 있죠. 사실 일북이란데가 정말 특별한 공간이었어요.
제게 꿈과 희망 모두를 준곳이에요.
심지어는 제가 늦은 나이에 취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일북이었죠. 왜냐면 제가 일북을 하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료를 매일 올렸어요. 그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매일 웹서핑을 해야했고 다양한 그림과 디자인물을 봤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눈이 올라가게 되었고 손도 따라가게 되더라구요. 회사에서 디자인 실기 면접을 봤는데 그 중에서 제가 특출났다고 하더라구요. 당시 28살이란 나이에 신입으로 회사를 들어가기가 정말 어려웠는데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일북이라는 공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해요.

일북에서 진행했던 전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는 무엇인가?
아이파티. 첫 전시기도 했고 또 첫 전시치고는 참 크게 흥행을 했던 전시에요.물론 아픔도 있었지만.하하. 그때 전시 끝내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너무 좋았죠.

"아이파티
< 아이파티 현장>

다시 한번 큰 전시를 해보고 싶어?

그럼요. 아이파티보다 훨씬 더 큰 전시를 해보고 싶죠.
꼭 멋지게 해낼 테니 기대 많이 해주세요.


디자이너에게는 끈기와 지구력이 중요한거 같아요.
재능이 있다해도 끈기와 지구력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죠.


여태껏 자신이 한 디자인물 중에 가장 마음에 들거나 애착이 가는 것은 무엇인가?
말해도 잘 모르겠지만...하하
회사를 다닐 때 작업한 캐릭터를 이용한 제품이 있었는데 그게 대박이 났었죠.
할 사람이 없어 재수없게 나한테 일이 온건데 의외로 반응이 너무 좋았던 기억이에요.

좋아하는 디자이너나 소개해주고 싶은 디자이너가 있어?

함영훈 디자이너를 좋아했어요.
벡터 이미지를 되게 좋아했고 학창시절에 함영훈씨 디자인물을 보고 되게 감각있다 생각했어요. 단순한데도 그런 감각을 뽑아낼 수 있다는게 부럽기도 하고 암튼 좋았죠.

"함영훈
<함영훈 디자이너 작품>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끈기와 지구력이 중요한거 같아요. 재능이 있다 해도 끈기와 지구력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죠. 노력하다 보면 감각도 자연스럽게 생기는거죠. 제가 일북 활동을 하면서 꾸준히 자료조사를 했고 그게 감각으로 발전했던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아요. 할게 없어서 이거 한다는 생각이면 안 했으면 좋겠어요. 생각보다 박봉에 힘든 게 많은데 신념이 없이는 견디기가 어렵거든요.

아이디어는 어디서 주로 얻어?

쥐어짤라 하지는 않구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죠.
아! 그리고 책을 통해서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아요.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어?

이건 근데 디자인 서적이 아니라서.

괜찮아.

삼국지요. 살아가면서 한번은 꼭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거 같아요.
디자인도 어찌보면 인생의 한 부분이니까요.

인간 이희복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왕. 하하하
아니면 지구정복.

원대한 꿈이 담긴 단어네.
야망이 있다고 생각해줬음 좋겠어요.


거침없는 사람. 고민보다는 행동을 하는 사람,
열정이 느껴지고 추진력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근래 들어 가장 기억에 남는 그 무엇이 있어?
요즘 되게 힘들었어요. 새롭게 뭔가를 시작하면서 안 힘들수는 없겠지만 암튼 굉장히 힘들었는데 그 핵심은 사람이었거든요. 근데 신기하게도 사람 때문에 힘들었는데 또 사람에 의해 다시 일어설 수 있더라구요. 그래서 사람이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또 한번 느꼈어요.
결론은 내가 하기 나름이다. 무엇을 하던 내가 하기 나름.

문다방 이야기를 좀 해보자. 뽁이가 있는 갤러리 도어와 연계된 커뮤니티로 알고 있다.

지금의 일북은 일러스트 커뮤니티잖아요.
근데 저는 앞으로 큐레이터가 최종 목표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문다방을 통해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공연, 퍼포먼스. 설치, 회화, 일러스트 모든 분야를 아우르고 싶은거죠. 네이버점과 싸이점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http://cafe.naver.com/moondabang.cafe

개미시장이란 타이틀로 정기적인 오프라인 행사를 하고 있던데,
어떤 행사인지 소개좀 해줘.

일단은 프리마켓 개념이에요.
차이점은 갤러리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신진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장이라는 거죠. 참가를 원하시는 분이 있다면 문다방클럽에 가입하시면 됩니다. 하하. 자세한 사항도 거기에 나와있어요.

앞으로의 포부가 궁금하다.

문화 분야의 아이콘, 역사가 되고 싶어요.
나중에는 문화부장관으로 성공할꺼에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니?

거침없는 사람. 고민보다는 행동을 하는 사람,
열정이 느껴지고 추진력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자신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언제였다고 생각해?

"항상"이었던 것 같아요.
학교를 들어 갔던 것도 그렇고 일북을 했던 것도 그렇고 회사를 들어갔던 것도 그렇고
디자이너에서 큐레이터로 직업을 바꿀떄도 그렇고 매 순간이 항상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저는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대학을 들어가서 늦은 나이에 회사에 입사를 했고 늦은 나이에 직업을 전향했어요. 하지만 늦었다고 머뭇거리기 보다는 저지르고 봤죠. 생각해보면 새로운 뭔가를 하는데 있어 겁을 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여기에 성실함과 여유있는 긍정적 마인드를 가지려 노력했구요.
그게 없으면 너무 힘들거든요. 저질러봐야 이게 어떻게 될지 알 수 있잖아요. 주저함이 있었다면 제가 디자이너에서 큐레이터로 전향할 수도 없었을 테고 현재 이런 새로운 만족도도 느끼지 못했겠죠. 이렇게 차근차근 분야를 넓혀가면서 제 꿈에 한발짝 다가섬을 느낄 수 있어 요즘 행복해요.

/ 2009. 8. 13












































































































"이희복" 지구정복 뽁| 이희복

숙명여대 시각디자인과 출신으로 RXK에서 잡화디자이너로 3년간 일했다.
현재는 갤러리 도어 소속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으며 7년째 일러스트 커뮤니티 일북 운영자로 활동중이다. 최근에는 문다방 커뮤니티와 개미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갤러리도어 사이트: www.thedoor.co.kr
개인메일: bbogi5@nate.com